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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일 미 언론에 따르면 캐슬린 케네디 타운젠드 전 메릴랜드주 부지사의 첫째딸인 매브 케네디 타운젠드 매킨(40)과 손자 기디언 조지프 케네디 매킨(8)이 미 동부 체서피크만에서 카누를 타다 실종됐다.

미 해안경비대가 수색에 나섰으나 26시간만에 중단되었고 시신 수습을 위한 수색작업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7일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아들인 매킨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2018년 12월 열린 로버트 F. 케네디 인권상 시상식에 참석한 매크 케네디 타운젠드 매킨

 

메브 케네디 타운젠드 매킨의 페이스북 계정에 있는 가족사진.

아랫줄 오른편에 함께 실종된 아드 기디언 조지프 케네디 매킨의 모습도 보인다

 


 

미국의 명문가로 유명한 케네디가는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으로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Joseph P. Kennedy)가 사업가로서 크게 성공을 거두고 난 후에 영국대사까지 지냈다. 보스턴 시장을 역임한 존 피츠제럴드(John Fitzgerald)의 딸 로즈와 결혼해서 슬하에 4남 5녀를 두게된다.

 

 

아버지인 조지프 케네디가 영국대사로 제임시절 가족사진.

오른쪽 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케네디 태통령, 로즈마리, 케슬린, 유니스, 패트릭, 로버트, 진, 에드워드

 

1944년 장남인 조지프 주니어가 제2차 세계대전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전투기가 영국 근해에 추락해 전사했다.

 



미국의 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가 암살범의 총탄에 맞아 숨진 것이 케네디가 비극의 대표적인 사건이다. 1946년 30세가 되기도 전 매사추세츠주 민주당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게 된 케네디는 6년 후인 1952년에는 상원의원으로 당선되고 그 다음해에 재클린과 결혼하게 된다. 준수한 용모와 언변, 여유있고 호소력 있는 분위기로 마침내 44세의 나이로 미국의 제35대 대통형으로 취임하게 된다. 취임사에서 그는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이가를 묻기 전에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물어 보십시오(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기게 된다.

 

 제35대 대통령 재임시절 케네디 가문 형제들이 백악관에서 촬영한 사진.

왼쪽부터 로버트 케네디, 에드워드 케네디, 존 F. 케네디의 모습.

 

 

존 F. 케네디 가족 / 출처:위키피디아

 

그러나 대통령으로써 의욕적으로 일을 펼치기도 전 1963년 11월 22일 오후 12시 30분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부인인 재클린과 함께 오픈카를 타고 자동차 퍼레이드를 하던 중 암살자의 총에 맞고 쓰러지고 만다. 용의자로 체포된 리 하비 오스왈드(Lee Harvey Oswald)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사건 이틀 뒤, 댈러스 경찰서 뒷마당에서 주 교도소로 이송되는 길에 잭 루비(Jack Ruby)에 의해 사살된다. 용의자의 죽음으로 인해 케네디 암살사건의 진말은 추측만 남긴채 진실은 덮여지고 아직까지 호사가들의 관심 속에 수많은 이야기만 만들어지고 있다.

 

 

 댈러스에서 암살당하기 직전 카퍼레이드를 하는 케네디 / 출처:인물과사상사

 


 

5년 후인 1968년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Robert F. Kennedy) 역시 법무부 장관과 뉴욕주 상원의원을 거쳐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유세 도중 암살당했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범인은 팔레스타인 출신 이민자인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으로 케네디의 친이스라엘 정책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설중인 로버트 케네디 / 총격을 받고 쓰러진 케네디

 

 


 

셋째인 로즈마리는 정신지체로 태어나서 전두엽 수술의 실패로 평생을 수용시설에서 지내야 했다.


 

넷째인 캐슬린은 1944년 해링턴 후작으로 불리는 윌리엄 존 로버트 카벤디시와 결혼했으나 결혼 4개월만에 제2차 세계대전 전투중에 남편이 전사했다. 그리고 1948년 새로 사귄 애인과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던 도중에 프랑스 세벤 산맥에서 추락사고로 숨졌다.

 

 


 

 

존 F.케네디의 아들인 존 F. 케네디주니어는 다능한 인물로 좋은 집안과 매력적인 외모등으로 당대의 유명 연예인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1966년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조깅을 하고 있는 케롤린 베셋에게 한 눈에 반해 그녀의 사무실에 찾아가 고백했다고 한다. 6개월간의 짧은 연애를 하고 결혼한 둘은 1969년 로리 케네디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비행기를 몰고 가다가 추락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1984년 로버트 케네디의 넷째 아들인 데이비드 케네디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한 호텔에서 마약인 코카인과 마약성 진통제인 데메롤의 과다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되었고

1997년에는 여섯째 아들인 마이클 르모인 케네디가  콜로라도 아스펜에서 스키를 타다가 나무에 충돌하는 사고로 사망했다.


 


 

2012년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의 부인인 메리 리처드슨 케네디가 2012년 5월 16일 뉴욕시 북부 베드퍼드 소재 로버트 케네디 2세의 집 헛간에서 목을 맨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로버트 케네디와 메리 케네디는 이혼 소송 중이었고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었다.


 

 


 

 

2019년 8월 1일 로버트 F. 케네디 법무장관의 외손녀 시어셔 케네디 힐(22)이 매사추세츠주 하이애니포트에 있는 케네디가 대저택에서 사망했다. 케네디 힐은 보스턴 칼리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으며 이 대학 내 민주당 청년 네트워크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약물 과다복용 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미국 명문가인 케네디가의 비극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찍 사망한 가족들만 모아도 이렇게 많고 사고나 병, 이혼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케네디가의 가족들은 훨씬 많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케네디가의 저주' 라고들 부른다. 책으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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